많은 전문가와 팬들이 EPL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를 논할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1순위 로이킨. 


로이킨하면 퍼거슨의 페르소나, 맨유 최고의 주장, 거친 수비형 미드필더의 대명사, 비에이라와의 라이벌, 더러운 성질머리가


떠오르는데요. 사실 저도 마찬가지지만 로이킨 전성기 활약을 지켜본 해외축구팬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로이킨이 전성기에서 


내려온 후의 모습을 주로 접하다보니 로이킨은 마케렐레, 가투소와 비슷한 계열의 선수?로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열정적인 수비장면이나




이런 깔끔한 수비장면



혹은 이런 거친 모습이나..




  이런 깡패 우두머리같은 모습들이 주로 알려져 있다보니 굳어진 이미지죠. 그렇지만 로이킨은 비에이라와는 5살, 


제라드와는 무려 9살 차이가 나는 노장?이었습니다. 사실 아스날과 맨유가 90년대말 2000년대초 최고의 라이벌 팀이었으니 


자연스레 주장끼리도 라이벌 구도가 형성 되었지만 같은 세대라고 하기에는 살짝? 무리가 따르는 나이 차이죠.. 


(참고로 스콜스와는 3살입니다. 스콜스도 EPL 늙은 나이까지 클래스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그렇지 비에이라보다 나이가 많습니다..ㅜㅜ)


로이킨이 2000년대 들어와서부터 피지컬이 많이 떨어지면서 좀더 후방에서 빌드업과 수비적인 역할에 치중하다보니 생긴 오해입니다.


전성기의 로이킨은 공수의 겸장 유나이티드의 엔진 말그대로 박투박의 상징과도 같은 미드필더였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맨유의 팬이라면 많은 분들이 대충 내용은 알고 계시니 좀더 어린시절의 공격적이었던 로이킨을 알아보도록 하죠.!





  로이킨은 맨유에 오기전 이미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는 선수 였습니다. 그도 그럴만한게 만19-21세의 나이로 1부리그 출전횟수가


150경기가 넘습니다. 요즘에도 결코 쉽지 않은 출전횟수인데 예전에는 더 어려웠죠. 물론 노팅엄포레스트가 명문팀이긴 했지만


어느정도 하락세를 타고 있던 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눈 여겨 보셔야할 것이 득점기록과 이적료인데


저 나이에 엄청나게 많은 경기에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득점 0.2를 넘기는 아주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스램제가비정상)


21살의 어린 나이로 팀의 에이스였으며 P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는 등 리그에서도 최고의 미드필더로 거듭나게 됩니다.


맨유에서 영입한 금액 역시 그때 당시 기록을 세운 이적료였고 무려 3년만에 몸값이375배가 뛰게 된 점만 봐도 얼마나 로이킨의


가치가 크게 수직 상승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종종 로이킨의 공격능력을 무시하면서 라이벌로 불리웠던 비에이라의


공격능력을 찬양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같은 나이의 비에이라와 비교하면 사실 비에이라의 공격능력이 많이 쳐진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스텟이 전부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것은 로이킨이 결코 비에이라보다 공격력이 떨어졌던 선수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로이킨은 같은 나이때 1부리그에서만 156경기 34골을 집어 넣은 뛰어난 공격력을 보유한 선수였습니다.


로이킨은 피지컬이 부족하여 EPL 최고로 남았지 피지컬까지 좋았으면 세계 최고가 되고도 남았을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로이킨의 어린시절 공격 능력을 소개하기 위하여 정말 많은 자료들을 뒤져봤습니다. 다큐멘터리부터 노팅엄 포레스트 각종


경기들 하이라이트들 뉴스들..  만19세의 잉글랜드 리그 데뷔 시즌엔 각종 위치 가리지 않고 후보로 출전하고 만20세부터 팀의 


핵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상당히 공격적인 롤로 출전하게 됩니다. 물론 그때는 로이킨 뿐만 아니라 영국축구 자체가


442 박스투박스 미드필더가 자연스러운 시대였습니다. 말 그대로 공격도 수비도 하는게 당연했던 것이죠... 어떤 분들은 이 시절의 


로이킨이 공미였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침투가 활발한? 전형적인 박스투박스 중미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공격능력이 좋은 로이킨이 맨유에서는 아니였나하면... 물론 맨유에서도 공수의 겸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주전은 아니기도 했고 사실상 공격에서 많은 역할을 칸토나가 담당했기 때문에(다음편은 칸토나편 ^^) 맨유에서 


중앙미드필더의 역할은 노팅엄포레스트 때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맨유에서는 사실 442라기보다 4411로 불러야 맞는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했고 그 중심에는 칸토나가 있었습니다. 최전방이 아닌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후방에서부터 빌드업 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맨유에서 로이킨의 역할은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맨유의 주전으로 거듭날 시기에는 퍼기의 아이들이 같이 


개화를 했고 공격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팀에 많다 보니 점점 더 팀의 밸런스를 잡는 위주의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사실 이때가 최전성기).. 거기에 로이킨 커리어에서 유명한 큰 부상도 당했죠.. 



  퍼기경도 로이킨이 공격적인 재능이 많은 선수라는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지만 그것보다 퍼기경께서 로이킨에게 주목한 점은


열정, 투지, 승부욕,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나 팀의 헌신 이런 멘탈적인 모습을 높게 보고 계셔서 영입했다고 밝히기도 하셨죠.


또 높은 위치에서보단 좀 더 아래쪽에서 활동하게 될것이라고 영입 인터뷰때 밝히기도 하셨구요... 공격적이고 열정 넘치고 활동량이 


높은 선수를 중앙미드필더로 기용... 이 대박적인 성공의 계기가 스미스의 참사와 더불어 안데르손에게까지 이어진게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추측을 하게 됩니다.. 사실 퍼기경께서 안데르손한테 반한 계기도 비슷하게 밝히셨던 기억이 나네요.. 안데스론 정말 참 좋아하던 선수였는데..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로이킨의 어린시절을 함께 감상해보도록 합시다.





풋풋했던 19살 땜빵시절 로이킨(윙어출전)










윙어로 출전하여 번뜩이는 모습들을 몇차례 보여주었고 어린 나이지만 불타는 투쟁심은 이때도 똑같았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어렸을때도 속도가 그렇게 빠르진 않았고 원투패스시도 드리블도 개인기보단 역동작으로 상대를 속이이거나 부드럽게 도는 턴을 

시도하는등 상당히 간결한 플레이를 펼칩니다. 경기장 전역을 뛰어다니는 활동량과 마지막까지 볼을 향해 달려가는 플레이가 인상 깊었던 경기였습니다.



20세 중미 주전시절








(20살에도 더러웠던 성질머리)



중미에서는 기본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수비가담을 하고 공격적으론 박스침투를 상당히 많이 시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운반할 수 있으면 볼을 운반하지만 볼을 주고 다시 포지션으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포워드런을 


시도하는 상당히 공격적인 움직임을 많이 보여줍니다. 간혹 노팅엄시절 로이킨은 공미였다.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볼배급보다는 적극적인 오프더볼을 통해서 경기를 풀어가는 걸로 봐선 제가 생각할땐 그냥 박스 침투가 시도가 많은 중미


즉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로 봐야하는게 맞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21살의 로이킨







21살의 로이킨도 사실 큰차이는 없습니다. 기본적인 간결한 패스 위주의 플레이 적극적인 박스침투

다만 조금더 아랫쪽에서 주고 바로 침투가 아니라 패스를 뿌리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외 침투 장면들 입니다.
















어린시절 로이킨을 보면 알겠지만 투박하다기보단 상당히 기술적인 선수였습니다.


부드러운 퍼스트터치와 턴, 톡톡 짧게 치고나가는 드리블, 적극적인 공격가담 상대방의 움직임을 먼저 읽고 


볼을 다루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프더볼이 정말 좋은 선수이기도 하고요.


즉 공간이해력과 시야또한 좋았다는 이야기죠. 21살에 리그 베스트11에 뽑힌


로이킨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공격능력을 어린 나이부터 가지고 있었던 최고의 유망주였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2편에서는 맨유에서 전성기를 맞는 로이킨을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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